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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향기

[스크랩] 생폴 요양원-고흐 3

by 약초보람 2010.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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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를르 병원의 정원. 1889년 4월. 빈센트 반 고흐

 

11, 28   생폴 요양원

고흐가 한밤중에 초록색 사과를 먹는다

빛이 강할수록 어둠은 깊어지고

발작의 고통은 불꽃처럼 선명하게 일어선다

자고 나면 살아있는 것들은 죽어나가고

시침이 횅하게 멈춘 텅 빈 생폴 정원에

명태 눈알들이 황폐하게 흩어져 있다

유훈(遺訓)처럼 생각없이 정직한 노인들은

각진 의자에 앉아 죽어서 살아가길 원했고

우짖으며 여울진 눈물 흩뿌리고 싶었다 

그들의 투명한 영혼이 별빛에 휘감겨

핏기없는 지상에서 하나 둘 사라지는 날 

측백나무는 측은하게 새살을 돋아냈고

밤하늘엔 진혼의 열기가 절규처럼 피어 올랐다.

크롬옐로가 환상으로 번지는 밤의 공복 속에 

망가진 광휘로 덫칠을 입힌 황금색 광폭은 

생명의 갈망을 끝없이 풀어헤치게 한다

날마다 살아있다는 고독의 흔적이 둘둘말려 밴

털실 뭉치 같은 사과를 깨쳐 먹는 한밤중에

우울의 거죽에 광기(狂氣)를 되새김질하며 

상실한 문명의 지축을 흔들고 있다

 

19세기 말에도 정신병원에 수용된 사람들 대부분은 산업화된 문명과 인간성이 상실된 사회로부터 깊은 좌절감을 맛본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만큼은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정상인보다 순수하고 연못의 물처럼 맑고 투명하다.

병원에서 폐쇄된 채 둘러싸인 상태, 그리고 그 답답함 속에서 불타오르는 내면의 세계를 정원을 통해 상징하고 있다. 정원의 둥근 연못을 중심으로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아케이드와 나무의 배치는 매우 함축적이고 조형적인 구도를 이룬다. 나무 줄기나 잎의 초록에는 검은 색이 섞여있어 다소 슬픈 분위기가 감돌지만 딱딱한 마당이나 기둥은 속을 감추면서 밝음으로 동요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넉넉한 공간이 안정적인 느낌을 던져주고 있고 이러한 윤곽 속에 드러난 감정의 촉매는 정신병원의 환자들이 일상 겪는 어둡고 시니크한 괴로움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다양한 대조나 온화한 색채를 통해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려는 고흐의 치열한 심리 상태가 잘 배어 있는 작품이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동물원 같은 곳에 갇혀 미친 사람들의 생활을 보고 있자니 막연한 불안이나 공포가 사라졌다. 정신병도 기타 여러 가지 질병들과 비슷한 질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런대로 편하구나. 어쨌든 환경을 바꾼 것은 나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정원에 나가 소재를 얻어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이제는 삶에 대한 공포도 한결 덜해졌고 우울한 기분도 그런대로 잠잠하다. 하지만 삶의 의지나 욕망 같은 그 어떤 일상적인 희망도 느낄 수 없다. 어떤 곳으로 가도 이제는 마찬가지 일거라는 생각에 굳이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아직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만이 놀랍고도 중요한 사실이란다."


고흐에게 생레미 시절은 미술사에서 가장 소용돌이 치는 불멸의 작품을 남긴 시기이기도 했다. 아를에서 고갱과의 다툼 이후 귀를 잘랐던 고흐는 우매한 마을사람들에 의해 정신병자로 취급받아 마을을 쫒겨 나왔다.

아를에서의 비극적인 사건 이후 1889년 5월 반 고흐는 생레미에 있는 생폴 드 모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곳에 입원해 있던 1년은 심각한 발작들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의사는 고흐가 간질병이라고 진단했다. 한밤중에 고통으로 갑자기 발작이 일어나면 물감 튜브를 빨아먹다가 발작이 진정되면 평소처럼 그림을 그리곤 했다. 고통은 광기보다 강했고 창조의 원천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공포가 엄습해 오는 발작증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예고 없는 발작이 여러 차례 계속되고 있지만 네게 보낼 그림을 여러 편 완성하였다. 밀밭에 나가 그린 그림은 아마 내 그림 중 가장 밝은 작품일거야."

 

이런 발작들이 멈추어질 때면,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들녁으로 배회하였다. 오랫동안 정신병원의 독방이나 정원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색상을 선택할 수 없었지만 그는 점점 강렬한 색채로 표현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부드럽고 좀더 차분한 그림을 그리려고 애를 썼지만, 흥분을 억제할수록 상상력이 더욱 넘쳐서 역동적인 형태와 힘찬 선에 바탕을 둔 표현이 그의 그림을 지배하게 되었다. 나중에 동생 테오와 병원측의 배려로 방 하나를 아틀리에로 사용하였다. 그는 병원의 정원에서 다양한 소재의 영감을 얻어 붓꽃과 라일락을 그렸고, 창문을 통해 볼 수 있었던 밀밭을 그렸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측백나무, 배후의 밀밭이나 산을 흡사 그 자신의 마음의 번민과 희망의 상징인 것처럼 응시했다. 세계 미술사에 영원히 남을 걸작인 "별이 빛나는 밤"도 이 시절에 그려졌다.

 

정신병원의 생활에 익숙해지자 의사의 지시하에 그는 보호자 한 명을 동반하고 들판에 나가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의 격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파른 협곡, 울퉁한 길, 비바람이 몰아치는 들판, 파도 치는 구름들, 비틀어진 나무들, 혹은 어둡게 불타오르는 나무들, 두터운 가시덤불 등의 강렬한 형태를 거친 붓질로 다루었다. 황량한 들판에서 발작으로 쓰러지기까지 하면서 줄기차게 격변하는 자연을 화폭에 담았다. 고흐는 발작 중에도 황폐한 필치로 고통스러울 정도로 냉정하게 그림을 그려나갔던 것이다.
극도의 절망과 긴장감이 넘치는 생활 속에서도 나무들은 커다란 불꽃으로 하늘을 찌르고. 구름은 거대한 파도처럼 흐르고, 태양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광폭하게 붓을 터치했다. 그 그림들의 천재지변과도 같은 특징들은 유능한 화상인 동생 테오를 놀라게 했다.

"형이 자연과 생명체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극단적인 지점까지 밀고 나간 형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일어 날 지경이야"

 

1889년 1월에 그의 그림 여섯 점이 브뤼셀에서 열린 20인전에 전시되었고, 3월 앵데팡당전에 전시된 그림은 모네, 쇠라, 피사로, 고갱, 기요맹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또한 그 전시회에서 친분이 있었던 시인 외젠보흐의 누나 안나보흐에게 "붉은 포도밭"이 400프랑(30달러)에 팔렸다. 고흐가 일생 동안 1,500 여 점 이상 그림을 그렸지만 유화로는 평생에 유일하게 팔린 작품이다. 전시회에서 비평가들은 고흐의 강렬한 색채를 야만적일 정도로 공격했으나 고흐의 친구인 베르나르, 로트랙, 고갱 등은 고흐의 그림이 이번 전시회의 핵심이라며 극도의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처음으로 고흐를 인정하는 글이 사회주의 경향의 잡지에 실렸다. 시인이자 저명한 미술평론가인 알베르 오리에르가 고흐의 그림에 깊은 감동을 받아 1890년 1월 <르 메르퀴르 드 프랑스>라는 잡지에 "고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라는 찬미적인 글을 게재했다. "그의 그림에는 만물이 우주적이고, 광기어리고 또 눈이 멀 것 같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그것은 자연의 모든 것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며 열광적으로 뒤틀리면서 격정의 정점에까지 올라간다."

 

아름다운 땅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는 고흐에게 예술적 색채 발견을 허락하여 그의 작품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지만 예술적 경지에 더 가까워질수록 고흐가 겪어야 하는 내면적인 갈등과 고통은 너무 혹독했다.

지독한 외로움과 우울증세로 인해  생레미를 떠나고 싶어했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1년이 넘도록 참아왔으나 이젠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지루함과 슬픔으로 숨이 막힐 것만 같다. 들판이나 작업장에서 일을 하는 병원으로 가고 싶다. 이곳보다는 그런 곳에서 그림의 소재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사랑하는 동생아, 나의 인내심이 극에 이르고 있다. 이대로 계속 있을 수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1890년 5월 17일 마침내 요양원을 떠나 파리에 도착했고, 그 후 정신과 의사인 가셰 박사를 만나기 위해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떠났다. 그곳이 고흐
인생의 마지막 여정이 되었다.  

출처 : 유방암 Success Cafe
글쓴이 : 내산 원글보기
메모 : 생의 고통을 슬기롭게 승화시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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